무한도전이 바라보는 세상
<무한도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간단히 소개하자면 7명의 멤버로 구성된 무한도전은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며 매주 다양한 포맷을 선보이고 있어. 이런 무한도전이 7년째 인기를 유지하는 장수비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나는 특별히 기획자인 김태호 PD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의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해. 그래, 잠깐 나와서 외모순위 꼴찌 했던 김태호 말이야. PD란게 원래 화면에는 잘 안 나오지만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총괄하는 사실상 진짜 1인자 거든.
태호PD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롤 모델로도 자주 거론될 만큼 단순히 주말예능PD의 위치를 넘어서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 중 한명으로 각광받고 있어. 또 많은 전문가들이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예능PD인 김태호를 뽑고 있어.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예능 프로 PD가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라니.
그럼 사람들이 왜 이렇게 김태호 PD에게 주목하는지 이제 한번 그 사람의 생각을 들추어 보자구. 내가 여기에 연결시킬 주제는 바로 ‘공리주의’야. 공리주의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상인데,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본성이 있어.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 가장 바람직한 삶은 행복을 늘리는 삶이겠지? 이것이 사회에 적용된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되도록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이 바로 가장 올바른 국가의 모습이 되는 거야. 그래,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지. 이 논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현대 거의 모든 국가에서 표방하고 있지. 그런데 이 공리주의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그건 다수에 가려진 소수에 대한 문제야. 김태호 PD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는지 무한도전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꾸나. (공리주의에 대한 문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주로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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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조정특집>으로 시작해볼까? 조정? 그게 뭔데? 그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들어나 봤을 거냐구. 그런데 웬걸 와우 조정이 이런 거였어? 조정 특집을 본 사람이라면 어느덧 조정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됐을 거야. 이렇듯 무한도전에서는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스포츠 계에서 소외된 비인기 종목을 활성화 시키는 데에 힘쓰고 있어. 이를 위해 멤버들이 직접 스포츠를 배우고, 실전에 나가기도 하지. <에어로빅>특집에서는 3개월간의 준비 끝에 무한도전 팀이 전국체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어. 결실을 얻기 위한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고, 동시에 예능으로써의 재미를 담아내어 시청자들이 에어로빅이라는 스포츠 종목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 <봅슬레이> 특집도 비슷한 예야. 방송이후 무한도전 제작진은 대표팀에게 봅슬레이를 증정했고, 이 봅슬레이로 연습한 4인승 봅슬레이 대표팀이 일본을 꺾고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고 하더라고. 이렇듯 무한도전 팀은 소외된 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물론,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유도해 오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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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PD는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녹화한다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살려 소외받은 자들과 소통 하는걸 중시하는 것 같아. 당연히 녹화 배경은 럭셔리한 배경보다는 주로 친근한 동네 길거리나 상가겠지? 대표적인 예로 09년에 방영한 <박명수의 기습공격>이 있어. 경제난을 겪고 있는 서민경제의 상징인 삼겹살집과 치킨 집을 기습해 가게 사장님의 희망 매출금액을 달성한다는 내용이지. 옷을 갖추어 입고 거들먹거리며 찾아가 성금을 건네는 식이 아니었어. 대신 멤버들이 조선시대 장군과 부하들로 분장하고 사극 톤의 말투를 사용하며 치킨과 삼겹살 적군을 물리쳐 민생을 안정시킨다는 코믹한 상황을 연출 했지. 이런 설정을 통해 출연자도 시청자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단순히 사람들을 안타깝게 묘사하고 맹목적으로 도움을 줌으로써 공익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지.
그런데 아무리 무한도전이 담고 있는 내용이 사회성이 짙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예능은 예능일 뿐이잖아? 자칫하다간 가르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구. 그래서 무한도전은 예능의 본분인 웃음에 충실해. 다만 우리에게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아. <나비효과 특집> 기억나? 컨테이너 박스에 북극이랑 몰디브로 나눠놓고 놀다가 물에 잠길 뻔 한 거. 머리로만 알던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걸 보고 지구온난화 떠올리게 만들었잖아! 굳이 지.구.온.난.화. 라고 써놓지 않고도 말야. 또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부하직원의 고충을 떠올리게 한 <(주)무한상사 야유회 특집>이나 정치인 선서유세전을 연상시킨 <미남이시네요>역시 비슷한 예로 볼 수 있어. 단 1표라도 얻기 위해 공약을 남발하고, 온갖 감언이설로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모습이 정치인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시청자들은 예능 본연의 과제인 웃음을 충분히 즐기고, 한바탕 웃고 난 뒤에는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것. 이것이 김태호PD의 방식인 거야.
이렇듯 김태호PD는 그만의 방식으로 사회적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끊임없이 눈길을 돌리면서 공리주의가 간과하고 있는 이타심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어. 비단 공리주의에 국한된 것뿐만 아니라 웃음 속에 미묘하게 그의 철학적 인식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섞어 놓고 있지. 그런데 과거에도 이런 코미디가 존재했다는 사실 아니?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네로 24시’등 풍자코미디에서 통렬하게 시대상을 풍자하며 소외된 민중들을 대변해 주었지. 무한도전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해. 물론 그런 메시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자기 몫인 거지.
사회가 어떤 모습이든 권력아래 소외된 사람은 늘 발생하게 마련이야.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해. 그리고 관심과 사랑은 실제로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지. 무한도전을 통해 웃음 속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함께 찾아 보자구.
김혜원 기자(lovelove8926@naver.com)
사진 : 무한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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