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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것’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2008년 영국의 권위 있는 일간지<가디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열 곳을 소개합니다. 책과 여행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그 기사를 보고 한 곳의 서점에 시선이 꽂히게 됩니다.
바로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란 곳에 있는 낡은 성당 서점 ‘셀렉시즈 도미니카넨 북스토어’였습니다. 13세기에 지어진 아주 예쁜 성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기독교가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이 성당의 운명도 기구하게 변해갑니다. 결국 성당은 마구간, 창고, 자전거 보관소, 심지어 권투경기장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신을 향해 기도를 하고, 고해성사를 하던 성스러운 장소가 그렇게 서서히 몰락해 갔던 것이죠.
2007년 네덜란드의 유명 서점 셀렉시즈 도미니카넨 북스토어는 버려진 성당을 매입, 서점으로 바꾸는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합니다. 3년 동안 600만 유로가 들어가는 큰 공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서점 공사가 갑자기 중단된 것입니다. 이유는 지하에서 발견된 어느 이름 모를 수도사의 유골 때문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유골의 신원을 밝히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당의 천정에 먼지에 가려져 있던 한 폭의 프레스코 벽화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중세 서양철학을 집대성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일대기를 그린 벽화였습니다. 결국 버려진 성당은 책을 만들고 보관했던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란 게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신원을 밝힐 수 없었던 그 지하실의 유골 역시 책을 만들었던 수도사가 아니었을까요? 고민 끝에 그들은 애초에 계획했던 설계도를 전면 폐기합니다. 책을 만들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성당의 역사를 지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우기로 계획된 처음 설계도 대신 한쪽 면에만 서고를 두는 설계도로 바꾼 것입니다.
책을 많이 전시해야만 보다 많은 이윤을 내야 하는 서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낡고 오래된 것의 가치가 눈앞의 이익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창고로 버려졌던 13세기의 오래된 성당 하나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는 2009년 오로지 이 성당 하나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일부러 프로젝트 하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기차만 타고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여행하는 ‘유레일 프로젝트’였습니다. 덕분에 저의 첫 번째 책이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바로 <유레일 루트 디자인>이란 책입니다.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되었지만, 여전히 저에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창조는 시작된다.”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저널리스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한 말입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을 관통하는 도시고속화도로 건설을 반대하면서 뉴욕시와 한 판 맞짱(?)을 떴던 아주 대단한 여성입니다.
그녀 덕분에 뉴욕의 작고 오래된 거리, 소호와 그리니치빌리지가 살아남았습니다. 뉴욕의 정체성이 살아남은 셈이죠. 그리고 그곳의 문화와 예술을 통해 뉴욕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뉴욕의 돈은 월스트리트에서 나오지만, 뉴욕의 영혼이 나오는 곳은 아마도 그런 작고 오래된 거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무작정 배낭을 메고 낡은 성당으로 달려갔던 이유였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 힘센 사람이 이기는 세상 속에서 저는 그냥 조용조용 제가 꿈꾸는 아름다운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습니다. 그곳에는 작고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 그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책과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내일을 꿈꾸는 생활. 혼자 가는 길이 인생이지만, 가끔은 벗이 있어 가는 길이 편하고 즐겁기도 하겠지요. 오늘도 저는 당신의 좋은 벗이 되기를 바라며 오래된 이야기들 속으로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