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살리려는 분투가 빛나더라 
전고필의 조곤조곤 [18] - 무장 칠거리당산 용당기 놀이 
  

 고창군의 무장면은 광주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낯선 곳이다. 근동의 영광 법성포나 고창읍성, 선운사 등이 하 유명하다보니 끼어 있는 이곳은 생략되는 것이 다반사다.
또 한편으로는 지명 탓도 있다. 지명에 배인 삼엄함. 전투를 위해 병장기를 챙기는 것을 무장이라고 하니 그러할 것이다.
본디 무장은 군현체제의 조선시대 태종17년(1417년)에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하면서 무장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시대상황이라면 필시 부르는 어감 때문에 피했을 것인데, 그 옛적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터이다. 호시탐탐 왜구들이 노략질을 하는 곳이 해안가와 곡창지대였으니 오히려 이 지명을 통해 근동 사람들은 유비무환의 정신과 임전무퇴의 다짐을 담았을 법하다.
영광과 무장 등의 풍물을 ‘영무장 농악’이라고 칭한다. 법성진이나 무장읍성이 있었으니 이곳 병사들의 훈련에 이 가락이 함께 했다는 이야기다. 병사들의 훈련에 사용될 음악이 굳이 화려하거나 유장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때문에 이쪽의 장단을 들으면 맺고 끊음이 확실하게 보이며, 그 흔하게 보이는 상모도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상쇠의 머리에 부포가 재주를 뽐낸다. 열두 발 상모까지 등장하는 좌도에 비해 현란하지 않지만 그래도 무언가의 서운함을 부포로 해소하는 것이다.

무장읍성 객사와 공덕비.

 

유심히 들여다보는 재미 쏠쏠한 무장읍성
무장에는 위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태종 때 만들어진 읍성이 있다. 몇 해 전부터 호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한 실증을 토대로 건물과 성터를 복원하고 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남문인 진무루와 객사인 송사지관, 동헌인 취백루가 남아 있었다. 오래전이곳 객사는 면사무소로 쓰였고, 동헌은 무장초등학교의 일부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무장사람들은 현대를 살면서도 과거와 끊임없이 교감하며 살았다. 특히나 학교로 가는 문이 읍성의 성문이었다니 정말 멋진 풍경이었을 터이다. 지금은 모두 이전해 갔고 복원작업이 한 단계 마무리를 하고 휴지기에 들어갔다.
남문의 이름이 진무루(鎭茂樓)인 것도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남쪽의 왜구들은 진압해야 할 대상이었다. 때문에 남문에 진압을 염두에 둔 누를 진(鎭)자가 배치된 것이다.
북쪽은 반대로 공경할 공(恭)자나 껴안을 공(拱)자를 써서 왕을 우러른다는 의미를 담아 공북루라 칭한 곳이 많다. 광주의 누문동도 바로 공북루가 있어서 누문동이 된 것이다. 호명하는 이름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무장읍성에서도 허투루 흘려 보내지지 않는다. 읍성의 둘레가 1.2km 정도 되는데 봉우리의 이름이 뱀의 머리 형태를 한 사두봉(巳頭峰)이다. 때문에 성안에는 뱀의 눈에 해당하는 곳에 두 개의 우물을 팠다고한다.
왕의 궐패를 모시고, 출장 온 관리의 숙소로 삼았던 객사의 이름도 무송과 장사의 뒷 글자를 각각 취하여 ‘송사지관’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무송과 장사현은 비록 사라졌지만 저 이름으로 아직도 건재함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객사 계단의 소맷돌에 새겨진 호랑이.

 

무장읍성에선 객사의 기단과 계단을 유심히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단 좌우에는 피어난 연꽃과 봉우리를 머금은 연꽃이 객사를 받치고 있다. 여기 사용된 자재들이 사찰에서 활용된 것을 재사용했든지, 절을 폐하고 객사를 건립했든지 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치형의 계단에는 호랑이가 위와 아래로 여의주를 두고 취하려는 자세를 하고 있다. 촬영했던 사진을 가지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이 이게 개가 맞지 호랑이는 아니라고 하는데, 안내판에는 분명 호랑이로 명시되어 있다.
마치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이나 민화 속의 ‘까치 호랑이 그림’과 같아 보이는 탓이다.
객사의 용도를 좀더 깊게 들여다보면, 세 채의 건물이 연달아 있는데 중심 건물이 높은 것은 당연히 왕의 궐패를 모시기 때문이다. 좌우의 익청이 낮은 것은 신하들의 여관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마주보았을 때 좌측이 문관, 우측이 무관이 거처하던 곳이다.
객사를 나와 좌측을 보면 공덕비 17기가 있다. 고개를 뒤튼 거북이가 비석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자면 웃음이 나온다.
“아나 공덕!” 그런 비아냥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현감의 집무공간인 취백루는 담백하다. 조선 명종 때 만들어졌다고 하니 동시대의 건물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터이다.
이런 모습을 죄다 다시 카메라에 담은 것은 사실 고창문화원에서 지난 11월20일 무장면소재지 일원에서 네 번째로 재현을 시도한 무장 칠거리 당산 용당기 놀이를 참관했기 때문이다. 그 관람의 전말은 이러하다.
 

기를 잡은 기잡이의 기예는 상대의 기를 쓸어내리기, 어깨놀이, 손놀이, 이마받기, 기돌리기 등 다채롭게 펼쳐졌다.

 

일제강점기에 사멸되었던 전통의 뜻깊은 재현
지방문화원의 역할 중에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책무다. 고창문화원은 고창의 문화가 읍내로 집중되는 것보다는 각 지역에서 다양하게 구현·전승되는 것을 열망하여 일제강점기에 그들의 탄압에 의해 사멸되었던 칠거리당산 용당기 놀이를 재현하고자 했다.
1978년 당시 80이 넘으신 어르신 세 분(김영배·진규선·김홍빈)에게 이 놀이가 얼마나 신성했으며 지역 공동체의 구심이자 자부심으로 자리했는지를 구술로 채록했던 책상 서랍 속의 것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그것이 2012년의 일이다.
고창문화원의 김주원 사무국장은 현장을 상세히 알고 계신 분들은 이미 작고하신 터라 전라북도에서 성행하는 기세배놀이나 깃절놀이, 기절놀이, 기접놀이 등의 전문가를 찾아 비슷한 농경문화권의 맥락 속에서 재현의 시나리오를 구상해 왔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장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 속에 담고자 했다.
다른 지역과 차별점은 바로 칠거리(상거리, 시거리, 중거리, 성안, 정거리, 사죽거리, 하거리)를 가진 무장의 지리적 특성이다. 가장 본조격인 어머니 당산이 아들네 집을 찾아가 한해살이를 물어보고 무병장수와 풍농을 기원했던 맥락으로 전개했다.

풍물패의 흥겨운 농악과 군무 행렬이 한데 어우러진 용당기 놀이.

 

깃대를 잡은 기잡이의 기를 다루는 기술이 관건
출발 지점은 무장의 중심이라 할 객사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현감을 앞세운 취타대가 길을 나서고 뒤를 이어 농기가 따라가는 형태를 취해야 되는데 풍물패를 가장 앞자리에 두었다. 길을 쓸고 삿된 것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풍물패 뒤로 농기와 용당기가 따르고 그 뒤를 취타대가 함께 했다.
무장고을의 고샅을 지나 로터리와 시장에서 한판 신명을 다해 놀고 본격적인 행사를 위해 하거리당산이 좌정했다고 상정한 영선고등학교 교정으로 들어선다.
교정의 한복판에 당산제를 위해 진설을 하고 제를 지내기 전에 용당기놀이를 한 차례 벌인다. 고등학생들이 잡고 있는 7개의 용당기는 어머니를 향해 절을 올리고 어머니는 자식들의 용당기에 복주머니를 달아준다. 일곱 마을의 용당기 모습이 찬란하다.
용당기는 대나무 장대로 만들었다. 인간의 뜻이 하늘로 전달되는 신단수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장대의 맨 꼭대기에는 꿩의 꼬리인 ‘꿩장목’ 장식을 하고 이를 묶는 끈은 칡 껍질을 벗겨 하얀 속살을 켜켜이 찢은 후 붉은 물을 들인 ‘총을치’를 썼다. 그리고 흰 장목수건을 길게 매달았다. 둘레에는 지네발이라고 하는 검정 천을 너풀거리게 만들었고, 황색의 주령이 달려 있다. 모두 천상의 세계에 인간의 염원을 담아 올리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용당기의 그림은 이름처럼 용이 주를 이루고 그 곁에는 잉어나 꽃이나 화염, 이 동네의 모습인 무장읍성을 담아냈다. 물을 다스리는 신격을 그린 것은 우순풍조를 기원하는 오래된 풍습이라 할 수 있다.
 

영선고 학생들이 고장의 전통문화를 전승하려 애쓰는 몸짓이 뜻깊다.

 

농기와 용당기를 가진 영선고등학교 학생 대열의 기세배와 자신의 기를 다루는 솜씨를 뽐내는 자리가 끝나자 이웃 고을에서 초대된 송제원, 이재신씨의 기놀이가 시작된다.
용당기 자체가 신격의 의미와 더불어 마을의 상징이기 때문에 기죽지 않기 위해서는 깃대를 잡은 기잡이의 기를 다루는 기술이 관건이다. 비록 마을별로 서열이 있더라도 그것을 혁파하고 싶은 열망들이 잠재된 것이고, 이 기를 앞세워 뜨락에 가다 서로 마주치면 상대를 제압하고자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때문에 기를 잡은 기잡이의 기예는 상대의 기를 쓸어내리기, 어깨놀이, 손놀이, 이마받기, 기돌리기 등에서 드러나게 된다. 과연 전문가다운 솜씨로 기를 가지고 자유분방하게 운동장을 누볐다.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는 그분들을 보면서 저 모습으로 한 마을을 대표하는 용수기를 잡은 분은 동네의 스타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200여 명이 함께 한 무장의 용당기 놀이는 풍물패의 흥겨운 농악과 군무 행렬 속에서 마감되어 갔다. 영선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업외 시간을 내어 고장의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갸륵함에 박수를 보내며 돌이켜 본다. 남도가 줄다리기의 문화라면 북도는 깃발의 문화라는 점, 같은 전승놀이임에도 각 고을마다 부르는 명칭과 연행방법의 변별점이 각별하게 배워지는 마당이었다.
고창문화원이 주관한 이번 행사를 보면서 비록 당대의 현장은 사멸되었지만 전통을 살리려는 고군분투에 고마움을 느끼며 무장에서의 한나절을 참으로 뜻깊게 보냈다.

전고필님은 세상의 길과 친해지려 늘 길과 이야기하고 다가가는 길 위의 유목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