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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5년 09월
제목  가우디 영혼의 결정체 - 이 한 장의 사진 / 김주원, 사진가



스페인의 천재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그의 인생 절반을 ‘성가족 성당’의 건축에 바쳤습니다. 마지막 10년간은 작업실을 아예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숙식을 같이 했으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 속에서도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는 스페인어로 ‘성가족’이란 뜻이며 성가족은 예수, 마리아, 요셉을 뜻합니다. 가우디의 스승 바야르가 설계를 맡아 1882년에 착공했으나 중도 하차하고 1883년부터 가우디가 맡아 진행했습니다.

가우디는 이곳을 속죄하는 사원이라 여기며 건축을 자기희생의 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1926년까지 무려 43년간 ‘성가족 성당’의 건축에만 매진했는데 안타깝게도 생전에 완공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우디의 정신을 계승한 건축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그의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한 해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습니다. 한 건축가의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의 집결체, 비록 미완의 모습이지만 많은 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건축 속에 스민 예술가의 영혼을 만나기 위함일 것입니다.

성가족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종교가 없거나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탄성이 절로 납니다. 우선 입구에 들어서면 바르셀로나의 뜨거움을 한 번에 식혀줄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싸고, 찌를 듯이 높은 천장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들어 놓습니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업한 가우디는 성당의 내부를 마치 거대한 나무들이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재현했습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성당 내부를 비추는 빛은 보는 방향, 빛의 강약과 높이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이며 작은 꽃을 그리기도 하고 나뭇잎을 만들기도 합니다. 곡선으로 가득 찬 이곳은 하루 종일 앉아 보기만 해도 전혀 지겹지 않습니다. 가우디는 “곡선은 신의 선이다”고 말했을 정도로 자연의 힘과 아름다움을 믿었습니다.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건축물에 자연의 따뜻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성가족 성당에는 건축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을 뜻하는 세 개의 파사드(Facade)가 존재합니다. 동쪽엔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cade), 서쪽엔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 남쪽엔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가 있는데, 각 파사드엔 탄생과 수난, 영광을 알리는 정교한 조각들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뜻하는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 생전에 만들어졌고 ‘수난’과 ‘영광’의 파사드는 사후 다른 건축가들이 지었습니다. 성가족 성당의 입구이기도 한 탄생의 파사드 앞에 서면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성당이 매우 거대해 어떤 렌즈와 카메라로도 그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아래에서 찍으면 큰 탑처럼 왜곡되어버리고 멀리서 바라보면 가로수와 도시에 가려버립니다. 성당 앞에 큰 빌딩의 옥상이라도 있다면 그곳에 올라가 사진을 담겠지만 멀리서 온 외국인이 그리로 숨어 들어간다는 건 너무 위험한 시도입니다.

나는 가우디가 머릿속에 그렸을 법한 시점을 찾아 성당 너머 작은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건너가 바라보았습니다. 성당의 반대편은 서쪽이고 낮엔 역광이라 촬영이 불가능해 저녁에 해가 떨어지는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관광객들이 하나둘 숙소로 돌아가고 도시의 작은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자 북적이던 거리에도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쾌청한 날씨, 약간의 구름, 바람이 불지 않아 호수에 성당의 반영까지 나타나는 최적의 조건.

마침내 조명이 켜지고 블루 아워의 하늘과 조화되는 시간! 가까이서 봤을 때 거대하고 기형적이라 생각했던 성당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직선이 거의 없고 곡선으로 쌓아 올린 탑은 동굴 속 종유석 모습 같기도 하고 빛을 향해 자라는 식물의 형상 같기도 합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보는 각도와 빛의 느낌에 따라 전혀 다른 형상입니다. 무려 130년 전에 이런 상상력을 발휘한 예술가가 지구상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경이로운 예술품 앞에서 최고의 빛과 색으로 사진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2015-09)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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