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을 믿으시나요?

소셜 빅 데이터(Social Big Data)를 분석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갑니다.

분석을 위해 사용하는 데이터들은 블로그나 트위터 등 인터넷에 공개된 글들을 통해 사람의 데이터 자체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아직까지 연구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때문에 컴퓨터과학이나 통계학, 경영학, 산업공학을 넘어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10여 개 전공의 전문가들과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지혜를 구해왔습니다. 그렇게 얻게 된 지식과 경험을 다시 산업계에 계시는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좀 더 실천적인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제가 다른 섬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공부를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마음이 열려 있고 그 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분들을 뵙게 됩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고, 그들의 치열한 고민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활용되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매일 매일의 만남이 서로 다른 것들을 이어주는 창의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합니다.

올해 초에는 대만 홍하이 그룹의 Terry Gou(궈타이밍, 郭台銘) 회장을 만났습니다. 테리 구 회장은 1974년 7,500달러로 대만 타이페이 옆의 작은 도시에서 창업한 뒤 40년 만에 연매출 150조, 100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는 회사를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우리에게는 미국 애플사의 제조를 전부 맡고 있는 폭스콘(Foxconn)의 회장으로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테리 구 회장이 방한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수년간 알고 지내온 교수님을 통해 우연히 저도 초대받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님 역시 수십 년 동안 알고 지내온 분이 홍하이 그룹의 회장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연을 맺게 된 거라고 합니다. 우연히 초대 받은 자리에서 테리 구 회장에게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해 드리니, ‘빅 데이터’라는 키워드에 큰 관심을 보이며 “다음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몇 개월 후 한국을 재방문한 테리 구 회장에게 재회한 기념으로 제가 쓴 책(대만판)를 선물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놀란 표정으로 이 책을 어떻게 구했냐고 되물었습니다. 한국인인 제가 대만어로 쓰인 책을 선물하니 적잖이 놀랐을 것으로 짐작한 저는 이 책은 제가 쓴 책의 번역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놀라며 자신의 가방에서 같은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대만의 서점에 들러서 자신의 관심 분야인 빅 데이터에 관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그때 점원이 제가 쓴 책을 추천해줬던 것입니다.

이후 출장 내내 그 책을 읽으며 내용에 동감하면서 연이어 직원들에게도 책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는 저자명이 한자로 써 있고, 또 송씨는 중국에도 흔히 있기에 당연히 중국인이 쓴 책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선물로 주면서 심지어 저자라고 밝히니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하고 놀랐던 것입니다. 겹겹의 우연에 감동한 그는 제 책에 직접 추천사를 써 주시고, 홍하이 그룹 본사로 초청까지 하여 직접 강연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대만을 방문하여 이천 명이 넘는 본사 직원들에게 강연을 한 다음 회장의 자택으로 초대받아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뛰노는 자택에서 직접 가정식으로 차린 밥을 회장 부부와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 헤어지기 전, 회장은 냅킨에 한자로 두 글자를 써서 보여줍니다.

  바로 ‘연분(緣分)’이라는 글자였습니다.

한자 문화권에 살고 있기에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저는 다른 그 어떤 표현보다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연분은 말 그대로 하늘이 베푼 인연입니다.

 작은 나라에 함께 살면서도 두 번을 만나기는 흔치 않습니다.

 하물며 국경을 넘어 70억이 넘는 사람들 중 우연히 만나 글을 나누고, 그 뜻이 같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전생과 인연을 믿든 그렇지 않든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음을 서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간 사회생활을 하며 겪은 수많은 일들을 돌이켜보니 밀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많은 우연이 필연으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연분을 쌓고 계신지요?

 학교를 마치고 지난 20년을 넘게 일하면서 처음 10년은 기술을, 그 다음 10년은 사람을 공부해 왔습니다. 그 사이 스스로 알게 모르게 수많은 연분을 쌓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분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금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을 거라 믿습니다. 한 번, 한 번의 만남이 모여 연분이 됩니다.

 

 그 연분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더 좋은 연분의 씨앗으로 소중히 지켜내시길 바랍니다.


*고려대 전산과학과 학사·석사, 컴퓨터학과 박사. 現 한국BI데이터마이닝학회 이사,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이화여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주)다음소프트 부사장으로 재직 중. 저서로는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2012), <한 우물에서 한눈팔기>(2014,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