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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교양/종합
정간물명   INDIGO+ing 인디고잉
게재월   2013년 12월
제목  더 정의로운 미래에 거는 선택


더 정의로운 미래에 거는 선택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채식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채식’이라 하기 어려울 만큼 육류와 계란 정도만 먹지 않고 있지만,
이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비윤리적인 동물 사육방식에 반대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저히 생명체에게 가할 수 없을 만큼의 처참한 환경에서 길러지고,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잔혹하게 죽어야 하는 이 불공정한 과정을 깨부수기 위한
가장 소극적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운동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달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을 읽고
채식이 갖는 많은 허점에 대해 동의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윤리적으로 길러지고 도살당하고 있는 동물들을 먹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 허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채식의 방향을 찾는
것이 더 옳은 것이다, 그렇게 믿었지요.
그럼 무엇을 먹느냐는 주변 분들의 질문에 늘 저는 “해산물은 먹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구차하게 변명을 조금 더 붙이자면
“제가 반대하는 건 비윤리적인 생산방식이라 육류만 거부하고 있습니다”라던가,
조금 더 솔직하자면 “해산물까지 안 먹으면 먹을 것이 없거든요”라고 말이죠.

입버릇처럼, 채식하는 것이 윤리적 만족감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노력이 하찮은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디고 서원의 아이들과 함께
플라스틱으로 인한 바다의 오염을 경고한 책 『플라스티키, 바다를 구해줘』를 읽으며
제가 외면하고자 했던 것들과 정면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는 육지에서 비롯된 쓰레기들로 인해
바다는 더 이상 생명체들이 숨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분별한 어획으로 바다가 비어가고 있는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바다거북은 인간이 버린 스티로폼을 먹고 잠수를 하지 못해 굶어 죽고 있고,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긴 비행을 하는 새 알바트로스는
먹이라고 생각하고 물어다 준 플라스틱 조각으로 자기 새끼를 죽이고 있습니다.
무한하고 풍요로울 것이라 믿었던 바다는,
그래서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 정도쯤은 거뜬히 정화할 것이라 생각했던 바다는,
그 어마어마한 착각으로 인해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이제 해산물도 먹지 않아야겠다,
똑같은 방식으로 다짐을 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물론, 무분별하게 포획될 수밖에 없도록 한 이 과소비의 현실에서
해산물을 먹지 않는 것 역시 무척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거북이와 알바트로스의 고통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일까요?
이유도 모른 채 생명의 위협을 매 순간 받고 있는 그들에게
제가 먹지 않는 그 고통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요.
그들의 고통은 쓰레기를 완전히 분해되도록 할 책임을 망각한 것,
최저가에 목메는 것이 소비자의 권리라고 착각한 것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추적할 능력이 저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볼 수 없기에, 만질 수 없기에, 그리고 내가 책임질 수 없기에
도덕적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이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아니기에 매연을 내뿜는 공장을 다른 국가에 건설할 수 있는 것,
중국 어느 마을에 버려져 유독한 폐기물이 될 것이기에 전자제품을 마음껏 바꿀 수 있는 것,
지금은 기술이 없어 어찌할 수 없지만 해저 저 어딘가에 저장하면 되기에 핵발전을 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발을 빼는 비겁하고 치졸한 행위입니다.
그것이 자유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자유 때문에 고통받고 신음할 다른 모든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수천수만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인간이 내버린 쓰레기는 어쩌면 인류 멸망 이후에도,
그다음 나타날 생태계에도 유독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무거운, 그 무서운 짓을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도 감히 하고 있는지요.

“결국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라는 거야”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어느 한쪽을 진리라고 여겨 이를 ‘믿고’ 그 의견 쪽에 선다면
‘나중에’ 도래할 헤겔적 진리를 가진 자들에 의해 단죄당하고 조소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는 도박입니다.
원전 사고의 방사선 피해는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핵무기와 원전은 전 세계에서 신속하게, 완전히 ‘폐기’돼야 합니다.
인류는 모든 지혜를 모아 이를 향해 ‘진화’해야 합니다.
이는 후퇴도 철수도 아닙니다. 이는 변혁이자 새로운 세계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즉 이쪽에 걸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도 이쪽에 거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사키 아타루, 『이 치열한 무력을』 중에서

퇴계가 젊은 학자들을 길러내기 위해
신중히 선택했다는 도산서원의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강은 녹조로 더 이상 아릅답지 않습니다.
4대강 이후의 현실입니다.
천 년을 내다보며 큰 이상을 꿈꾸는 도산서원은 한순간의 이익과 욕심으로 오염되었습니다.
가타부타 따질 것 없이, 이를 행할 수 있는 배짱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질 수 없는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는 무모함은 자유가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굶주리고 병든 아이들도,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삶의 터전을 잃고 존재의 흔적조차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생물들도
결코 그런 상황에 처해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기원에는 어떤 무모한 선택들이 있었는지요.
고통의 기원을 찾는 일은, 그 고통 앞에 한없이 겸허해져야 하는 윤리적 명령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삶의 형태가, 문제라고 지적된 수많은 것들이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 말이죠.
두고 볼 일입니다.
그 도박에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유겠지만,
그 자유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 역시도 “이쪽에 걸겠습니다.”
부디 천 년이 지나도 빛날 수 있는 쪽을 믿을 수 있기를,
우리의 삶과 인류의 역사라는 도박에
더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INDIGO+ing 인디고잉 (2013-12)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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