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육지 경계인 인도-버마 산맥에서,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다니던 통로 길목에 자리잡은 보클락 마을 전경.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구분하는 이 산맥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주변의 경관이 말해주고 있다. 출처:khaipi,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2.0 Generic license

기원전 350년, 한반도에 남방으로부터 철기문화가 도착했다. 그때부터 어느 정도 동질적인 하나의 사회집단을 가리키는 말로서 ‘가야’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 가설엔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 무엇보다 기원전 350년에 지각활동이 활발해져 동남아 지진 취약지대의 제철인들이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다는데, 어떻게 해서 거의 같은 시점에 그 멀리 떨어진 한반도 남단에 도착해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일시에 확산되어 갈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아무리 고대 온난기에 해상활동이 대체로 활발했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빠른 속도의 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이전 단계 철기문명의 전파 속도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철기문명이 발상지인 터키에서 인도 아대륙에 처음 전해진 것이 기원전 2500년이다. 철기문명은 거기서 2000년 이상 머물러 있었다. 그랬다가 처음 동쪽으로 진출한 흔적이 기원전 500년 캄보디아에서 발견된다. 단 150년 후인 기원전 350년엔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그리고 한반도까지 거의 동시에 철기문명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경로엔 중국 본토와 일본 열도 전체가 빠져 있다.)
   
   이 사실은 관련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철기문명 전파 양상에 대해서는 20세기 후반까지 대체로 단순한 가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에서 시작된 철기문명이 비교적 균등한 속도로 유라시아 대륙 육로인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이르렀고, 거기서 한반도와 동남아, 그리고 일본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전세계적으로 유물 발굴이 활발해지고 또 그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기법이 정교화되면서, 이런 가설은 이제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앞서 말한 대로, 철기문명이 소아시아에서 시작되어서 동쪽으로 진출했다는 점 말고는 다른 부분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는 증거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육로로도 전파됐지만 해로를 통한 전파의 연대가 훨씬 앞섰고 그 속도도 빨랐으며, 무엇보다 각 지역에서 철기문명이 시작된 연대가 너무 들쭉날쭉이다. 철기문명 전파에 대한 새로운 종합적 가설이 아직까지 제기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이유다.
   
    

   고대 항해에서 이용했던 바닷길의 거리를 가늠해보면, 인도 동부 해안에서 캄보디아까지의 구간이나 캄보디아에서 한반도까지의 구간이나 거의 동일하다. 약 5000 킬로미터다. 같은 거리를 지나는 데 전자는 2000년 걸렸고 후자는 150년 걸렸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 역사 흐름에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여러 가지 환경요인을 통합해서 고려하면 선명한 그림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여러 번 보았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자.
   
    

   위 왼쪽 그래프는 기원전 2500년부터 기원전 100년 무렵까지의 기후변화를 보여준다. 기원전 2500년은 인도에 제철이 도입되었던 때인데, 그때부터 약 2000년간 철기문명은 인도 아대륙을 벗어나는 일이 없이 그 안에서만 꽃을 피웠다.
   
   기후변화 그래프는 그럴 수 있었던 조건을 보여준다. 그 기간 동안엔, 짧고 온건한 한랭기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따뜻한 온난기였다. 인도도 아열대로 더운 기후여서, 철기문명을 지속할 수 있는 삼림이 충분히 공급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랭기 중 두 번 정도의 지각활동 활성화기가 있었지만, 어차피 인도는 지각활동이 별로 활발한 지역이 아니어서 큰 영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철문명의 속성상 삼림생태계 훼손이 지속되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목재를 구할 수 있는 해외기지를 찾아 나서야 했던 것은 필연이었다. 갑작스럽게 온도가 떨어지는 한랭기로 들어서면 나무의 생장속도가 크게 둔화됐고 더욱 그럴 필요성이 커졌을 것이다. 제철 생산성이 추락하고 인도 내부에는 치열한 사회적 갈등이 일면서, 제철인들은 동쪽 진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던지, 위 오른쪽 두 개의 지도를 같이 고려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는 또한 철기문명이 2000년 동안이나 인도 아대륙에 머물러 있으면서 더 이상 동쪽으로 나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인도 아대륙은 자신만의 독립적인 지판 안에 위치해 있다. 지판은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땅덩이의 표면 부분을 말한다. 지구 표면은 마치 축구공이나 조각보처럼, 여개의 땅 조각들이 합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표면에도 당연히 그 경계면을 따라 접합부분이 있다. 이 접합 부분, 즉 지판과 지판이 만나는 경계면은 땅 위에서나 해저에서나 굴곡이 크고 지각활동이 심하다. 육지일 경우엔 험하고 높은 산을 이루며, 바다 밑에 있을 경우에도 해저 산맥을 이룬다. 그 위로 해류가 가로질러 흘러가는 일이 없이 물길이 따로 돈다.
   
   인도 지판 육지부의 동쪽 경계면은 현재 미얀마와 국경을 이루는 인도-버마 산맥이다. 평균 고도 1000미터로 대단히 높은 편은 아니지만 경사가 급한 지형이며 화산 등 지각활동에 취약한 지질구조를 갖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산지를 넘어 소통하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바다로 나가는 길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벵골만류는 인도 동쪽 바다에서만 도는 회전류여서 지판 경계를 넘어가지 않는다. 또한 동남아시아와 바다 쪽 경계선은 해저화산 활동이 많은 위험한 지역이다.
   
   하지만 고대 제철인이 해외 제철기지를 찾아 동진하는 원동력은 만만치 않다. 주로 해안선을 따라 전진하는 일이 그래도 쉬웠을 것이다. 기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기원전 500년,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부에 정착할 수 있었다. 앞서 본, 나기 소마 공주와 프레야 타옹 왕자 주연의 캄보디아 건국 설화가 그 상황을 말해준다.
   
   캄보디아는 화산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한 곳이다. 인연을 따라 그 해안가에 터전을 잡았지만, 메콩강 삼각주 평야는 철광석, 삼림, 석회석 등 제철 원료가 풍부한 곳이 아니다. 제철인들은 곧 그런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지로 진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50년 후인 기원전 350년쯤, 그 후손들은 그렇게 애써 일군 제철기지의 상당부분을 버려야 할 일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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