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눈을 감고 우주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광활하고 무한한 공간 속에서 열심히 부딪치며 주어진 삶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저를 떠올립니다. 제가 가장 잘 아는 우주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한 인간을 말입니다. 삶의 시간은 특별한 만남들로 채워집니다. 그 만남들은 삶에 어떠한 길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열심히 걷다 보면 또 삶의 시간 속에서 어떠한 만남이 찾아오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저의 시간들도 그래왔습니다. 만남을 경험하며 살아낸 제 시간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앞 서점에서 저는 한 과학 잡지를 만났습니다. 그 잡지 속 문구 하나에 이끌려 수학, 과학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은 1년에 48만 원으로 대학에 다닐 수 있다.”

집안 형편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 그 시기 제 생각의 폭에 가장 큰 제약이었기에 과학고등학교를 거쳐 KAIST에 진학하는 것이 중학교 3년 동안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결국 원하던 대학에 입학해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잡지의 표지가 우주왕복선 사진이었고, 그것이 멋져 우주를 꿈꾸게 되었기 때문에 항공우주공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스물넷. 방송과 언론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시절, 대한민국 과학계를 뒤흔든 황우석 사건이 제 삶에도 찾아왔습니다. 당시 석사 학위를 위해 밤을 새워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잠을 쫓으려 라디오에 의지했습니다. 그러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언론의 역할을 고민해볼 정도에 다다랐습니다. 공학도에게 찾아온 그 사건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반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저는 인생의 방향을 공학자에서 아나운서로, 그래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쪽으로 바꾸었습니다.

바라던 아나운서가 된 후 방송 경력이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제 의지와 상관없이 타 부서로 전보되었습니다. 그 부서에서 2년 가까이 버티다가 결국 휴직을 결심했습니다. 운이 좋아 훗날 아나운서로 복귀한다고 해도 공백이 너무 길 것이었기에 차분하게 내면을 채우며 방송에 도움이 될 공부를 해두는 것이 낫겠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불법 행위들이 시사 이슈로 다루어졌고, 그래서 법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 그리고 딸과의 만남은 제 인생에 가장 큰 행운으로 찾아왔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아나운서 지망생을 좋게 봐준 아내가 제게 먼저 다가왔고, 그 인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매일 그녀를 만나곤 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사랑하던 일을 못 하게 됐을 무렵, 그 누구보다 제 마음을 지켜주고 들여다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시기를 지나며 어렵게 딸을 만났습니다.

저는 아내와 딸 덕분에 힘든 시기를 더 큰 행복으로 채우며 아나운서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만남들이 이유가 있었음을 느끼게 한 또 다른 만남들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지난해는 우리나라 우주과학사에 특히 기념할 만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바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와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의 발사 성공이었습니다. 저는 그 두 중계방송의 진행을 맡아 장시간의 특보들을 전했습니다. 당시 뉴스특보의 담당 팀장이 제가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진행자로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전부터 황우석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 제 인생의 길을 바꾼 계기를 마련해준 ‘PD수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히려 아나운서 일을 못 했던 시간 덕분에 현직 아나운서 최초로 변호사 자격을 가진 아나운서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의 시간은, 끝없는 우주의 셀 수 없이 많은 은하와 별 속에서 흐르며 제 삶의 길에 이정표들을 만나게 했습니다. 과학 잡지와 방송 프로그램, 타 부서 발령과 법 공부, 그리고 아내와 딸과의 만남은 어쩌면 모두 우연 같습니다. 하지만 그저 우연이라는 말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우연의 거듭된 반복 속에서 탄생한 것임을 저는 느낍니다.

수많은 은하 중 특히 태양계 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생명을 꽃피운 그 광활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만남들은 그저 단순한 우연으로 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주가 만들어갈 삶의 길 위에 놓인, 미래의 나를 만드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경험일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의 모든 만남들이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이 글을 통한 독자님들과의 만남도 우주가 만든 특별한 사건이지 않을까요.

*1982년 출생. 대전과학고등학교를 거쳐 카이스트 항공우주학 학사 및 석사 졸업, 박사과정 수료.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석사. 제11회 변호사시험 합격. 대한민국 아나운서대상 클럽상 수상(2018).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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