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이다. 13년을 궁금해하던 사람과의 첫 만남.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더욱 쿵쾅거린다. 오늘따라 유난히 심한 것 같은 정체로 마음이 점점 더 초조해진다. 늦지 않으려면 좀 뛰어야겠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가쁜 숨 속으로 밀려드는 차가운 바람에서 상쾌한 박하향이 나는 듯하다.

2009년, 만들어만 놓고 한참을 방치하다 나조차도 오랜만에 들어가 본 내 블로그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그간의 음악 작업과 앨범 발표 곡들에 관한 정리가 필요해 만든 노트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남긴 첫 흔적이었다. 이런 가슴 저린 선율을 만드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는 말에 괜히 울컥했다. 

아티스트 유니스 황이라는 이름으로 1집을 낸 후 5년 만의 2집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더 좋은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다시 앨범을 만들어도 될까 의문을 품고 있던 때였기에 그 짧은 메시지는 지쳐가는 나를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이미 댓글이 달린 지 두 달 이상 흘렀지만, 나는 늦게나마 감사의 답글을 남겼다. 다행히 그분께서는 반갑게 다시 나타나셨고, 드문드문 반가운 댓글이 이어지며 우린 친구가 되었다. 비둘기 발목에 답신을 달아 보내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느리게 오가는 댓글이었지만 그래서 더 반가웠고, 간결한 일상의 안부 몇 줄에서도 느껴지는 그분의 따듯한 온기와 깊이에 더 마음이 갔다. 내 음악을 많이 좋아해 주시고 진심 어린 응원으로 힘낼 수 있게 해 주시는 그분은 내 마음속의 첫 번째 진정한 팬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나 첫 콘서트를 열게 되었던 2015년. 내 공연을 오래 기다려왔던 그분을 꼭 초대해 생생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린 서로의 연락처를 몰랐다.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음에도 그분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한참 연락이 뜸했던 때였지만, 일단 유일한 연락 통로인 방명록에 초대글을 남겨놓았다. 조금은 드라마틱한 장면을 기대하며 객석 중앙 좌석도 비워둔 채 기다렸지만, 그런 만남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의 연락도 그렇게 뚝 끊어졌다. 그 후 몇 번의 공연, 2장의 앨범, 한 권의 악보집을 더 만들었다. 음악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튜브 채널도 열었다. 

예전의 블로그보다는 신경 써서 운영하고 있던 유튜브 채널에 언젠가부터 눈에 띄는 구독자 한 분이 계셨다. 단순히 내 음악을 좋아함을 넘어 숨겨둔 의미까지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 놀랍기도 했던 그의 글을 종종 읽으며 오래전 블로그의 그분이 생각났다. 잘 우려낸 차 한 잔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 글에서 느껴지는 온도와 향기가 너무도 비슷했다. 어쩌면 그분일 수도 있겠다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네~ 저 유니스 님이 생각하시는 그 사람 맞아요. 드디어 알아봐 주셨네요.” 

환한 웃음을 띤 대답이 돌아왔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너무 유난 떠는 극성팬처럼 보일까 봐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2015년에는 무슨 오류였는지 블로그 댓글 기능이 막혀 글도 써지지 않았고, 콘서트 바로 다음날 발견한 초대글에 몇 날 며칠을 속상해했다는 사연도 전했다. 지난 이야기였지만 그때의 답답함과 아쉬움이 생생히 느껴졌다. 1년 전쯤 유튜브에서 나를 다시 찾았을 땐 너무 반가워 울 뻔했다는 말을 듣고는 서둘러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설레며 기다리던 날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문제가 터져 약속을 미뤄야만 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몹시 짜증스럽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약속을 한 주 더 미루며 거듭 사과를 하는 내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뭐~ 13년도 기다렸는데 며칠 더 못 기다리겠어요?” 

그 말이 한참 동안 마음에 남았다. 아… 13년이라니! 만나고 헤어짐이 참으로 쉬워진 세상에 이렇게 오랜 시간 응원하며 기다려준 존재가 있다니, 많은 것들이 가쁜 호흡으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함께 발맞춰 걸어줄 사람들이 있다니. 문득 놀랍고 감사해졌다. 

드디어 약속한 오늘이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우린 만난다. 지난 13년보다 남은 한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 것도 같다. 서둘러 길을 걷는다. 이 길을 걷기까지, 서로를 만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은 조심스럽고 느린 걸음이었지만 이제 우린 만난다. 가쁜 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어본다. 날은 춥지만 다행히 햇살은 좋은 날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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