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우리 모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씨 뿌리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고흐는 정신적 질환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지만, 생전에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입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전도사와 아트 딜러 등의 직업을 거친 후 28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사로 일했던 고흐는 가난하지만 정직한 노력으로 감자를 일구는 농민들과 함께하며, 설교로 전하지 못하는 말씀을 그림으로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지요. 

고흐는 브뤼셀, 헤이그, 앙베르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노동자와 농민 등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그림에 담으며 밀레처럼 노동자 계급을 그리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 시기 대표작이 <감자 먹는 사람들>(1885)입니다. 이후 1886년, 파리의 구필화랑에서 화상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와 함께 생활하며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인상주의 화풍과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칙칙하고 어두웠던 그림이 밝은 화풍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도시의 생활에 지친 그는 남프랑스 아를로 떠나게 됩니다. 해가 내리쬐는 아를은 고흐의 고향 네덜란드와 비슷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 풍경은 고흐를 매료시켰습니다. 

아를에서 그는 자신만을 위한 작업이 아닌, 화가들이 연합해 자기 그림을 공동체 소유로 하고 그림을 판매한 돈을 나눠 가지는 화가 공동체를 꿈꾸게 됩니다. 고흐는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아를로 올 것을 권유하고, 이를 받아들인 고갱과의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고갱을 기다리며 해바라기 그림으로 고갱의 방을 장식합니다. 고흐에게는 테오에게 아주 멋진 그림이 될 거라는 편지를 남길 만큼 희망과 행복에 가득 찬 시기였습니다. 이때 그려진 작품들은 고흐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남게 됩니다. 

고흐는 고갱이 온 첫날 <씨 뿌리는 사람>을 그렸고, 30점이 넘는 드로잉과 그림을 남겼습니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이 떠오르신다고요? 고흐는 가난한 농부의 일상을 숭고하게 표현한 밀레의 작품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밀레의 작품 속 농부의 일상은 실은 생명의 원천인 대지의 위대함을 표현한 것이었고, 아마도 많은 열매를 맺어 세상을 이롭게 했을 것입니다. 고귀하고 역사적인 존재가 아닌, 거친 옷을 입고 들판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부의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누구보다 숭고한 존재였습니다. 

“요즘은 습작을 그리는 게 씨 뿌리는 일처럼 느껴지는구나. 그림을 그리고 나면, 추수를 간절히 염원하게 되지.”

고흐의 다른 작품들보다 유난히 습작이 많았던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의 그림을 단순히 복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흐는 밀레의 작품이 좀 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작품보다 열심히 습작하고 연구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고흐의 새로운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이 시기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넘쳤고, 농부가 씨를 뿌리듯 자신도 언젠가는 인정받게 되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며 마음속에 희망을 뿌렸습니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태양은 온 대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토양은 비옥한 보라색 흙덩어리로 가득합니다. ‘노랑과 보라의 색 대조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보여주는 <씨 뿌리는 사람>은 희망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고흐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잘 알려졌다시피 고갱과의 생활은 파탄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갈망했던 화가 공동체의 꿈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고흐는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고야 말았고, 생 제레미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아마 보통의 경우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꿈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라면 한없는 슬픔과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흐는 절망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별이 빛나는 밤><가셰 박사> 등 가장 찬란한 작품을 남깁니다. 

만약 그가 씨뿌리기를 멈추었다면? 고흐의 인생만을 놓고 본다면 희망의 싹을 틔우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살아가는 내내 노력했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했던 그의 작품은 지금 우리에게 무너지지 말고 일어나라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예술의 힘은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싹을 틔웠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영원할 것입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